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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 칼럼] 3·1절과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북미회담

[417호] 입력ㆍ발행 : 2019-03-05

2019년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각지에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3·1운동의 배경으로는 일반적으로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을 들고 있다. 내부요인으로는 1910년 8월 29일 일본 제국에게 강제합병당한 후 10년 동안 일제의 무단 통치로 인한 수탈과 탄압 및 고종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 등에 따른 ‘분노한 민중의 봉기’를, 외부요인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루어진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안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이른바 ‘민족자결주의’와 소련의 지도자였던 레닌 역시 반제국주의 일환으로 제국주의 국가에 지배당하는 약속 민족들의 독립을 지원하자는 주장 등에 힘입어 우리민족도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요인으로 꼽고 있다.
결과적으로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가 꾸려졌으며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는 등 3·1운동 이전과 이후의 독립운동 양상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어 조선의 패망 후 대한민국 건국의 시발점을 3·1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3·1운동 당시에 봉기한 민중이 바라던 독립된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인지에 대해서는 되짚어 봐야겠다.
우선 윌슨과 레닌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약소민족들의 독립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유럽 열강들에 비해 미국은 산업화도 늦었지만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남북전쟁 등 내부문제로 인해 식민지 개척의 후발주자였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전 세계는 제국주의와 피제국주의 즉 식민지로 양분화된 상황이었다. 독일이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이 된 것도 산업화 후발주자로서 값싼 원자재 공급과 제품 판매의 시장 확보 기능이라는 식민지를 개척하지 못해 식민지 탈환의 일환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을 직접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장 먼저 식민지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필리핀이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필리핀을 두고 벌인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에 따라 필리핀은 미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필리핀을 미국만의 온전한 식민지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은 아시아의 최고 열강인 일제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다.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 통치와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 식민 통치를 서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이후 1919년 1월 파리강화회담에 나선 미국은 당시 필리핀을 식민지로 두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필리핀 민족의 운명을 필리핀 민족 스스로 결정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이해력이다. 윌슨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자면 약소민족이 어느 국가로부터 지배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더 나아가 기존 열강들의 식민지배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미국이 열강이 소유한 식민지에 대해 앞으로 전쟁을 통해 소유권을 획득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윌슨이 미국 의회에서 발표한 전쟁 방지를 위한 14개조 평화 원칙을 살펴봐도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윌슨이 “식민지 문제는 자유롭고 열린 자세로,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제국의 식민지를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미국과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협박도 포함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중 유일하게 아시아에 속해있던 일본이 패전국인 독일의 식민지인 중국 칭다오를 식민지로 인정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패전국 오스트리아는 식민지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한 이들 국가는 고스란히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인 아랍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도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가졌으며, 일부 지역은 미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승리국인 미국이 프랑스를 도왔다는 이유로 프랑스로부터 양도 받아 베트남 전쟁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승전국인 미국은 패전국인 일본의 식민지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기에 한국도 포함된다.
식민지의 의미와 운영방식은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 식민지는 노예 즉 노동력 확보를 위한 식민지 쟁탈전이었다면, 점차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식민지 양상은 공장을 돌리기 위한 값싼 원자재 확보와 제품 판매를 위한 시장으로서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식민지 양상은 제품의 판매처는 물론 막대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핫머니들의 노름판으로서의 식민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특수하게 군수산업제품 판매처로서의 기능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대한제국은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겼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빼앗겼다. 심지어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에도 당사국으로 참여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제2차 북미회담 의제에는 한국전쟁의 종전선언도 포함되었지만 대한민국은 미국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다.
100년 전 3·1운동 당시 독립을 외쳤던 우리 민중들이 바라던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인지, 현재의 대한민국은 외세로부터 온전히 독립된 나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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